스페이스앤빈 “방사선·전자파 차폐 기술, 활용 분야 무궁무진해” [스타트업in과기대]|동아일보 (donga.com)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창업지원단은 창업보육센터를 통해 유망 스타트업에 입주공간과 멘토링, 네트워킹, 사업화 지원을 제공하며 그들의 성장을 돕고 있습니다. '스타트업in과기대'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창업보육센터를 보금자리로 삼아 도약을 꿈꾸는 스타트업들의 얘기를 전합니다.
지난 2013년 한 게이머가 ‘슈퍼 마리오 64’라는 게임을 즐기던 중 캐릭터가 순간이동을 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마침 그 게이머가 게임을 빠르게 완주하고, 그 기록을 경쟁하는 스피드런(Speedrun) 도전자였기에 이 일은 소소하게 화제가 됐다. 영문 모를 현상 덕분에 기록을 크게 단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이 현상을 재현하려는 시도와 연구가 이뤄졌지만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 프로그램 코드 자체에 오류가 있어서 발생한 버그라면 재현이 가능해야 하는데, 그런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서야 이 의문의 순간이동 현상이 캐릭터 좌표값이 담긴 특정 메모리 수치가 바뀌면서 일어난 일이며, 그 원인이 우주 방서선이라는 가설이 유력하게 떠올랐다.
이 사건은 게임 중 일어난 일이라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났다. 하지만 게임기가 아닌 자율주행 중인 자동차, 복잡한 전자장비에 의해 제어되는 항공기, 국가 핵심 설비에서 일어났다면 어땠을까? 심각한 인명사고나 인프라 마비로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사회와 산업 모든 영역의 디지털화가 진행되면서 방사선과 전자파가 영향을 미치는 영역은 더욱 넓어지고 있다. 방사선과 전자파로부터 시스템을 보호하는 적절한 수단이 없다면 작은 오류가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위험을 내포하게 되는 셈이다.
지난 2021년 설립된 스페이스앤빈은 이처럼 점차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방사선, 전자파 차폐를 위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스타트업이다. 지상의 작은 콩(빈)이 우주(스페이스)까지 자라며 모든 영역을 아우르는 차폐 기술을 제공한다는 의미를 사명에 담았다.
스페이스앤빈의 차폐 솔루션 ‘스쿠텀(SCUTUM)’은 라틴어로 방패를 의미한다. 각 기기와 설비의 운용 상황에서 발생하는 방사선 및 전자파 환경을 시뮬레이션하고, 그에 맞는 최적의 차폐 소재를 적용하는 솔루션이다. 우주에서 발생하는 우주방사선, 의료 현장에서 사용되는 엑스선, 각종 통신기기 및 전기장치에서 발생하는 전자기파 등 모든 대역의 전자파 및 방사선을 차폐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갖추고 있어 어떤 산업 분야에도 적용 가능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우주 산업이다. 민간 주도 우주 산업 시대가 도래하면서 고궤도 정지 위성에서 저궤도 군집 위성으로 빠르게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이에 맞춰 우주 산업에서는 고궤도 환경에 맞춰 내방사선성은 높지만, 성능은 낮은 ‘우주급 부품’이 아닌 저렴하면서도 성능은 더 뛰어난 상용 부품(COTS, Commercial Off The Shelf)을 활용하려는 시도가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이처럼 상용 부품을 우주로 보내기 위해서는 저궤도 환경에 맞는 차폐 소재를 적용하고, 이를 실제 우주 환경에서 검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스페이스앤빈에서는 저궤도 우주 환경에 맞는 상용 부품 차폐 하우징을 개발하고, 우주 환경에서의 성능을 검증을 위한 자체 큐브 위성체 제작에 나서는 등 우주 분야 차폐 솔루션 사업화 준비를 차근차근 이어가고 있다.
의료 분야에서도 차폐 기술은 의료진 안전을 보호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의료 현장에서 주로 쓰이는 방사선 촬영 시스템은 고정식이지만, 진료 과목이나 상황에 따라서는 이동형 방사선 촬영 시스템을 쓰기도 한다. 방사선 촬영 시 환자가 소량의 방사선에 노출되는 건 불가피하지만, 문제는 의료진이다.
의료진은 이동형 방사선 기기를 사용할 때마다 매번 물체와 부딪히며 흩어지는 방사선, 즉 산란 방사선에 노출된다. 1년에 엑스선 촬영을 할 일이 한 손에 꼽을 정도인 환자들과 달리 의료진은 촬영 때마다 소량이지만 꾸준히 방사선에 노출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의료계 일각에서는 산란 방사선 노출 위험이나 관련 질병에 대한 우려가 꾸준히 제기된다.
스페이스앤빈에서는 이러한 의료진의 산란 방사선 노출을 막아주는 산란 방사선 저감복을 개발해 지난해부터 해외에 수출 중이다. 카자흐스탄, 키르기르스탄 등 체르노빌 사태를 가까이 겪으며 방사선 위험에 대한 의식이 높은 구 소련권 중앙아시아 국가에서 수요가 특히 높다고 한다. 올해에도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수출 확대에 집중할 계획이다. 국내에서도 올해 4월부터 온라인 치과재료마켓을 통해 제품을 판매 중이다.
자동차 시장도 스페이스앤빈이 주목하는 분야다. 현재 자동차는 전기, 내연기관 등 동력의 종류를 막론하고 ‘달리는 스마트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전장화가 급격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전장품의 전자파 장해(EMI) 문제와 전장품 전자파 적합성(EMC)과 관련한 수요도 점차 증가할 전망이다.
전기차 무선 충전 기술 상용화 시도가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는 점도 차폐 수요를 키우는 요인이다. 전기차 무선 충전은 스마트폰 무선 충전처럼 케이블 연결 없이 차를 전기 패드에 올려놓기만 해도 충전되는 방식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도로에 충전 코일을 매립해 운행 중에도 무선 충전이 가능한 ‘동적 무선 충전’ 또한 일부 국가 및 도시에서는 시범 운영이 되고 있다.
다만 본격적인 상용화를 위해서는 충전 효율과 충전 시 발생할 전자기로부터 전장과 탑승자에 미칠 영향에 대한 대책 등 해결해야 할 문제도 있다. 전자기파를 적절히 차단하면서도 차체 무게에는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 경량 차폐 소재 기술이 필요한 이유다. 실제 스페이스앤빈은 현재 국책과제로 진행 중인 전기차 무선전력전송 기술 개발 사업에 전자파 차폐 경량소재 개발 분야 공동연구 기업으로 참여 중이다.
스페이스앤빈은 이외에도 금융, 정보통신 기반 보호시설, 국방 분야 등 고출력 전자기파(EMP) 차폐가 필요한 분야에 대한 사업 모델 개발도 진행하고 있다. 민경령 스페이스앤빈 대표는 “어디에 적용하느냐에 따라 대응해야 할 주파수 대역이 달라지는데, 스페이스앤빈은 모든 대역에 차폐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갖추고 있어 어떤 산업에도 적용이 가능한 사업 확장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21년 서울과학기술대학교로부터 예비창업패키지를 지원받아 창업한 스페이스앤빈은 현재도 과기대 창업보육센터 입주 기업으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민경령 대표를 중심으로, 군에서 항공우주 및 방위 산업 관련 연구를 한 전문가, 민간 기업에서 30년간 전자 규격 및 신뢰성 검증을 담당한 품질 책임자 등이 모여 스페이스앤빈을 이끌고 있다.
민경령 대표는 “스페이스앤빈은 스타트업답게 도전적 자세, 빠른 실행력을 갖춘 동시에 오랜 경력을 지닌 전문가의 관록도 지니고 있다”면서 “차폐 기술이 필요한 곳이라면 아무리 도전적이고 어려운 문제라도 빠르게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고 말했다.
IT동아 권택경 기자 tk@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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